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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신숙의 일본통신] 유기농업으로 지속가능한 마을을 만들다

안신숙의 일본통신 / 유기농업으로 지속가능한 마을을 만들다

사이타마현 오가와마치(埼玉?小川町)는 도쿄에서 전철로 약 1시간 거리에 위치한 인구 3만 5천 명이 살고 있는 작은 마을이다. 에도시대부터 전통 화지, 비단, 일본주 등의 특산품을 에도성에 독점 공급해 온 역사와 전통을 소유한 지역이며, 특히 13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오가와 화지(小川和紙)는 전국적으로 유명해 오랫동안 ‘화지의 고향’으로 불려오기도 했다. 손으로 뜨는 오가와 화지 제조 기술은 지금까지 그 명맥이 이어져 국가의 주요 무형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신라의 삼국 통일과 함께 멸망한 고구려인들이 이 지역으로 도주해서 마을을 형성해 살면서 혹독한 추위와 차가운 산수(山水)를 이용해 종이를 제조하기 시작한 것이 오가와 화지의 시초였다고 하니 남다른 정감이 느껴지지 않을 수 없다.

오가와마치가 지금 ‘유기농업의 고장’이라는 새로운 명성을 얻고 있다. 1970년 유기재배라는 말도 커뮤니티 비지니스라는 말도 아직 낯설었던 시대에, 이곳에서 유기재배를 처음 시작한 사람은 당시 22살의 카네코 요시노리(金子美登) 씨이다. 낙농가의 아들로 태어나 농업을 잇기 위해 농업 고등학교를 졸업한 카네코 씨는 농수산부가 개최하는 농업학교에서 공부하면서, 무농약, 무화학비료로 쌀과 야채를 재배하여 지역의 소비자에게 직접 공급하는 새로운 농업의 형태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이따이이따이병, 미나마타병 등 공해병이 많이 발생하면서 환경오염 문제가 사회적으로 급부상하기 시작한 시대적 배경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자연이 순환하는 농장

농업학교를 졸업한 카네코 씨는 고향으로 돌아와 바로 시모사토(霜里) 농장을 시작하면서 그 구상을 구체화했다. 유기재배의 기술도 인식도 아직 확립돼 있지 않던 시대였다. 농약과 화학비료를 일절 사용하지 않고, 자연의 법칙과 선조의 지혜를 하나하나 실험하면서 쌀과 채소를 재배했다. 정성 들여 재배한 채소는 그 어느 일등품 채소보다 맛이 좋았지만, 모양과 크기가 불규칙했다. 시장에 출하하는 것은 애초에 포기하고 유기재배를 이해해 주는 소비자를 직접 찾아 나섰다. 사전에 계약을 맺고 재배한 농산물을 직접 전달해 줄 소비자를 찾았지만 유기재배에 대한 인식이 미미했던 시대라 그 또한 쉽지는 않았다.  

1975년 어렵게 10세대의 가정과 제휴를 맺으면서 유기농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계절에 맞는 다양한 작물을 재배하면서, 소와 닭, 오리 등도 사육하는 시모사토 농장에서는 모든 것이 순환된다. 밭에서 수확한 채소는 사람들에게 소비되고, 음식물 쓰레기는 논밭의 거름이 되고, 잡초는 가축의 먹이가 되며, 가축의 분뇨와 산에서 모은 낙엽은 퇴비가 되어 토양의 양분이 되고 있다. 다이옥신이나 환경 호르몬 등의 유해물질이 도저히 끼어들 수 없는 자연적 순환 과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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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농법으로 벼농사를 짓는다.


시모사토 농장의 순환은 에너지 자급으로 완성된다. 그는 석유, 천연가스와 달리 고갈되지 않는 자연 에너지를 농업에 살리는 것에 매우 관심을 갖고 실험해 오고 있다. 태양광 발전의 보급과 활용에 앞장서고 지역의 ‘NGO 솔라네트’, ‘유한회사 에리카’와 함께 태양광 전지를 손수 제작해, 물을 뿌리는 펌프와 방목해 사육하고 있는 오리의 울타리로 사용하고 있다. 농장에는 소규모 바이오가스프란트를 만들어, 가축의 분뇨와 음식물 찌꺼기 등을 투입하고 있다. 발생한 매탄가스는 열탕용 연료로 사용하고 액체 비료는 채소 재배에 이용하고 있다. 지역 음식점 두부 공장 등에서 수거해 온 폐식용유로 얻은 SVO(Straight Vegetable Oil)을 트랙터와 승용차의 연료를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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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모사토 농장에 설치된 솔라판넬


그 후 시모사토 농장과 제휴를 맺은 가정도 조금씩 늘어 지금은 약 30세대의 가정에 쌀과 콩, 밀가루 등의 곡물류에서부터 각종 제철 채소, 계란, 우유로 패키지를 만들어 주 1회 직접 전달해 주고 있다. 배달하면서 종종 차와 가벼운 식사를 함께 하며 담소를 나누면서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유기적 관계도 맺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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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휴를 맺은 가정에 배달되는 시모사토 농장의 유기 재배 농작물들


유기농업의 고장, 오가와마치

카네코 씨는 농장을 운영하면서 유기농업 보급에도 전력을 기울여 왔다. 1979년부터 후계자 양성을 위해 1~2년 코스로, 매년 4~10명까지 취농연수생들을 받아 카네코식 유기농법을 가르치고 있다. 단기 연수생을 포함하면 그가 가르친 취농자가 벌써 120명을 훌쩍 넘어선다. 일본은 물론 덴마크 등의 해외에서도 찾아오고 있는데, 현재 한국에서도 2명의 연수생이 찾아와 카네코식 유기농업을 배우고 있다. 이는 명실상부 일본 유기농업의 일인자로 평가받고 있는 그의 명성도 있겠지만, 자연 순환형 농업에 대한 그의 농업 철학이 40년에 걸쳐 사람들의 호응을 얻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연수를 마치고 오가와마치에서 독립해 유기농장을 시작한 생산자도 늘어, 1994년에는 임의 단체인 ‘오가와마치 유기농업 생산자 그룹’이 결성돼 자연에 부담을 주지 않는 순환형의 농업을 함께 개척해 가고 있다. 각 농장들은 각자의 제휴 가정과 계약을 맺고 유기재배를 하지만, 일부는 공동 출하하기도 한다.
또한 지역 주민들 중에서도 유기농업으로 전환하는 농가가 늘어나면서, 2004년에는 지역  차원에서 ‘밭농사-밀농사-콩농사’의 2년 3모작 공동 유기재배가 시작되었고, 2009년에는 오가와마치의회에서 ‘유기농업 추진법’이 제정돼 마을 전체가 유기농업을 실시하게 됐다. 말그대로 오가와마치는 ‘유기농업의 고장’이 되어, 자치단체도 함께 지역 차원에서 유기농업을 지역 전략 산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는 유기농업을 시작할 때부터 지역 산업과의 연계를 꾸준히 모색해 왔다. 그래서 1988년 유기미로 빚은 ‘오가와의 천연주’가 지역 특산품으로 처음 탄생했다. 메이지시대부터 이 지역에서 일본 전통주를 빚어 온 양조업자가 유기재배한 쌀로 술을 빚자고 제안해서 카네코 씨와 유기 생산자 그룹에서 특별히 주조용 현미를 재배해 제공하기 시작한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지역 정미업자와 손을 잡고 농장의 유기밀을 이용한 수제 우동을 만들어 제품화에  성공했으며, 1994년부터는 지역의 다른 양조업자와 유기콩과 밀로 ‘유메노야마사토’ 유기 간장 브랜드를 상품화했다. 또 1999년부터는 지역 두부 공장과 함께 유기콩으로 만든 두부를 출하하게 됐다. 이처럼 유기 농산물을 이용한 지역 특산품이 꾸준히 개발되면서 유기농업을 중심으로 순환은 새로운 커뮤니티비지니스의 탄생과 함께 지역 활성화의 중요한 기반이 되고 있다.
 
바이오가스플랜트가 이룬 순환형 지역사회

오가와마치에서는 2001년부터 NPO 후우도 활용센터가 중심이 되어 음식물 찌꺼기를 이용한 바이오가스플랜트를 실험 가동하고 있다. 플랜트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발효시켜 매탄가스와 액체비료를 만든다. 유기 농가에서 액체 비료를 구입해 퇴비로 사용하고, 매탄가스는 연료로 사용한다. 음식물 쓰레기 회수에 참가하는 가정에는 채소 교환 쿠폰을 제공해 지역 수확제 때 채소와 교환할 수 있게 한다. 지역 자치단체는 쓰레기 소각 비용을 반으로 줄일 수 있었다. 소비자에게서 돌아온 음식물 찌꺼기가 자원이 되어 다시 토지로 돌아가며,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채소가 되어 다시 소비자에게 돌아가는 순환형 지역사회의 또 하나의 실현이다.

이는 오랜기간 바이오가스플랜트를 연구하며 자연에너지 보급에 노력해 온 NPO후오도의 쿠하바라 마모루(桑原 衛) 대표의 노력의 결실이기도 하다. 그는 1980년 중반 수자원 엔지니어로 네팔을 방문했을 때 바이오가스를 처음 접하고 이에 흥미를 갖게 됐다. 그 뒤 중국에서 바이오 가스 기술을 습득하고 일본에 돌아와 바이오가스 기술 보급을 위해 유기 농업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오가와마치에 이주, 카네코씨 농장을 비롯한 지역의 유기 농장에 개인용 바이오가스플랜트를 만들어 왔다.

주택단지의 주민 14세대의 음식물 찌거기를 회수하면서 시작한 오가와마치의 바이오플랜트사업은, 그 뒤 참여하는 가정이 300세대로 확대되고, 지차체도 적극 참여하면서, 현재는 지역 초등학교 급식에서 나오는 음식물 찌꺼기도 회수하여 자원화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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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O법인 후우도가 운영하는 바이오가스플랜트


이 음식물 찌꺼기 자원화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NPO 생활공방 쯔바사?유(翼?遊)의 타카하시 유우코(高橋優子) 대표는 “바이오가스플랜트사업의 자금의 반은 시민의 출자로 이루어진다. 시민으로부터 자원과 자금을 출자받아 그 성과를 공유하면서, 에너지도 식량도 자급하는 고부가의 순환형 지역을 만들어 언제까지나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만들어 가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녀는 유기농업과 자연 에너지로 지속가능한 농업 모델을 만들기 위해 NPO생활공방 쯔바사?유를 결성해 지역의 힘, 시민들의 힘을 결집시켜 가고 있다.
 
글_ 안신숙 (희망제작소 일본 주재 객원연구위원 westwood@makehop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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