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향과전망

[사회적경제센터] 사회적기업, 성장의 이유와 딜레마

미국의 종합 경제지인 <포춘(Fortune)>은 매년 국내외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기업들을 선정하여 ‘초고속 성장 기업 100(100 Fastest-Growing Companies)’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하고 있으며, 기업들은 이 명단에 포함되는 것을 크나큰 영예로 여기고, 다른 기업들의 선망의 대상이 됩니다.
“어떻게 하면 더 성장할 수 있을 것인가?”는 거의 모든 기업에게 가장 중요한 화두 중 하나입니다. 심지어, 과도한 성장 중심의 국가 전략에 경종을 울린 초기 사례 중 하나인 ‘로마클럽’의 제 1차 보고서 <성장의 한계>에서도 ‘지속가능한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즉, 미래 세대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훼손하는 것에 대해 강한 우려를 표명한 보고서에서 조차, 개발, 발전, 성장의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지는 못한 것이지요.
이렇듯 우리는 기업의 성장을 논할 때, “기업은 성장해야 한다”는 명제를 암묵적인 대전제로 삼고는 합니다. 하지만 너무도 당연하게 이 명제를 전제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의문은 계속해서 남습니다. 도대체 기업은 왜 성장해야 하는 것일까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에 대한 몇 가지 대답들이 있습니다. 첫째, 학자들이 한결같이 입을 모아 말하는 기업의 존재 목적은 주주 이익의 극대화입니다(물론 이 명제에 대한 반론이 존재하지만, 이에 대해 가부를 밝히는 것은 이 글의 목적을 넘어서므로 논외로 하기로 합니다. 이 글에서는 ‘일반적인’ 견해를 중심으로 논지를 이어가고자 합니다). 주주가 기업의 이해관계자 중 가장 큰 위험을 지기에 기업은 주주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존재하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더 많은 이익을 주주에게 안겨주기 위해 기업은 성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기업의 성장은 고용 및 부를 창출하는 순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기업이 성장하게 되면 더 많은 일자리와 경제적 부를 만들어낼 수 있고, 이것이 국가 경제 및 국민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이지요.
셋째, 성장하지 않는 기업은 살아남을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성장하지 않고 정체된 기업은, 비단 매출과 이익 규모만 정체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급변하는 시장의 요구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해 재화와 용역의 경쟁 우위를 잃게 되어 도태될 수 밖에 없고, 반대로 기업이 성장하게 되면 규모의 경제를 통해 시장 지배력을 높일 수 있고, 이는 그 자체로 경쟁 우위가 된다는 것입니다.

사회적 기업은 일반적인 기업과 마찬가지로 성장해야만 하는가

이쯤에서 질문을 바꾸어보겠습니다. 사회적 기업은 성장해야 하는 것일까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상기 세 가지 논점을 사회적 기업에 적용해 보기 이전에, “사회적 기업이 성장해야 한다”는 명제 자체에 직관적인 불편함이 내재돼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회적 기업’, 더 나아가 ‘사회적 경제’ 자체가 성장 및 경쟁만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자본주의 시장 경제의 실패를 보완하고 바로잡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적 기업이 또 다시 ‘성장’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순환 논증의 오류로 보일 수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답하기 위해 상기 제시한 ‘일반적인 기업이 성장해야 하는 이유’를 좀 더 고찰해 볼 것을 제안합니다.
세 번째 논거를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이는 당위적 관점입니다. 성장하지 않는 기업은 고인 물과 같아서, 동기부여에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고, 변화에 대한 열정, 더 높은 가치에 대한 도전 정신 등이 고갈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미션(사회적 기업의 경우에는 소셜 미션)의 실현을 위한 동기부여 또한 자연히 감소하게 됩니다. 역사는, 성장하지 않는 기업(더 넓게는 조직)은 정체된 상태로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도태됨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즉, 성장은 지속가능성을 위한 전제조건이 되는 셈입니다.
효용 확대의 관점인 두 번째 논거 또한 사회적 기업의 성장을 지지합니다. 사회적 기업의 소셜 미션은 해결되어야 하는 사회적 문제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합니다. 사회적 기업이 성장할수록, 사회적 기업이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는 더 많이 해결됩니다. 예를 들어 일자리 창출형 사회적 기업의 경우, 성장함에 따라 더 많은 노동소외계층에게 일자리를 줄 수 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회적 기업도 생존을 위해 성장해야 하지만, 탐욕을 위한 성장은 경계해야

문제는 주주이익의 극대화라는 첫 번째 관점입니다. ‘주주에게 더 많은 이익을 주기 위해 성장한다’는 명제에는 무절제함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더 많은 이익’, ‘극대화’에는 끝이 없습니다. 즉, (주주가 원하는 한) 지속가능하기 위한 적절한 성장이 아닌, 무분별한 성장, 경쟁자를 제압하고 꺾는 성장, 시장을 지배하는 성장, 홀로 독식하는 성장이 그 자체로 내재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면 사회적 기업의 존재 목적은 사회적 이익의 극대화 입니다. 무조건적이고 무분별한 성장은 사회적 이익의 극대화를 담보하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 회사의 성장만을 위해 시장 지배력을 이용해 경쟁자를 고사시키는 전략을 구사하고 그 전략이 성공할 경우, 경쟁사가 파산하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게 되고, 고객들이 누릴 수 있는 제품과 서비스의 다양성이 줄어드는 등, 사회 전체의 이익은 감소하게 됩니다.
정리하면, 사회적 기업도 어디까지나 ‘기업’이자 조직이기 때문에, 지속가능하기 위해서 최소한의 성장이 필요하고, 더 나아가 사회적 기업이 만들어내는 사회적 효용의 확산을 위해 어느 정도의 성장은 권장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몇몇 영리기업과 같이, 우리 회사의 성장이 타인, 타기업, 더 나아가 사회전체의 이익을 훼손할 정도의 무분별한 성장, 즉 ‘탐욕’으로 전화하는 것을 항상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희망제작소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사회적 기업가 대부분은 지속가능성을 확보하여 계속 기업으로 존재하기 위한, 그리고 효용의 확산을 위한 합리적인 수준의 성장에는 상당수가 동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성장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회의적인 시각을 지니고 있는 기업가도 있었습니다. 이들 대부분이 전술한 이유와 같이 성장을 ‘무분별한 성장과 과도한 경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재미있는 것은 계속되는 성장에 부담을 느끼는 기업의 상당수가 창업기를 지난 성장기 사회적 기업이라는 점입니다. 이는 기업 성장 단계에 따른 경쟁의 필요성 및 강도와 관련이 있습니다. 사례를 통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제품 차별화 정도가 크지 않은 사무용품을 제조하는 자활형 사회적 기업 A社를 상정해 보도록 합시다. A社는 저소득계층 및 장애인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을 소셜미션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 회사는 사회적 기업 제한 입찰의 도입 및 권장과, ㄱ 지역 공공기관의 親사회적기업 성향을 기회요인으로 보고 사업을 시작하였습니다. 소셜미션이 명확하고, 사업 기회 포착 및 사업화 전략이 뚜렷했기 때문에 쉽게 초기 자본금을 구할 수 있었고, 親사회적기업 성향을 지닌 공공기관을 설득하여 해당 사무용품에 대해 사회적 기업 제한 입찰을 이끌어내어 낙찰을 받기에 이르렀습니다.
매년 ㄱ 지역 공공기관으로부터 안정적인 물량을 낙찰받을 수 있었던 A社는 창업 5년만에 사무/관리 직원 10여명에 현장근로자 50여명으로 구성된 회사로 성장하였습니다. 소셜 미션에 따라 보다 더 많은 수혜자에게 혜택을 주기 위하여, 즉 더 많은 저소득계층과 장애인을 고용하기 위해 A사의 최고경영자는 회사를 성장시키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이미 ㄱ 지역의 공공기관의 수요는 이미 포화상태이며, 민간 시장에 뛰어들기에는 제품의 경쟁력이 부족하고, 지금 당장 현재의 제품군 외에 다른 제품군으로 다각화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성장기 사회적기업은 동료 사회적 기업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어

이런 상황에서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성장을 위한 전략적 방향은 지역적인 확장입니다. 역시 사회적 기업에게 우호적인 인근 ㄴ 지역의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것이지요. 일이 잘 풀리면 단번에 현재 매출과 맞먹는 규모의 추가 매출을 달성할 수 있는 기회로 보입니다.
하지만 바로 이 지점이 문제입니다. ㄴ 지역은 사회적 기업에 우호적인 만큼, 이미 다른 사회적 기업인 B社로부터 동일한 제품을 공급받고 있습니다. 사회적 기업 제한 입찰로 다음 입찰이 진행되겠지만, 사회적 기업들끼리 입찰에서 부딪히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A社가 낙찰 받게 된다면 B社는 주요 고객을 잃게 될 것이고, 최악의 경우 현장근로자의 고용을 유지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성장하고자 하는 사회적 기업들이 마주하게 되는 딜레마입니다. 현재 국내 사회적 경제 생태계에서는 상기 사례와 같은 일들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사회적 기업 제한입찰이 도입되었지만, 바로 그 입찰에 참여할 수 있는 사회적 기업의 숫자가 이미 적지 않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소셜 미션을 지니고, 비슷한 사업 모델로 시작한 사회적 기업들이, 현재 비슷한 성장 곡선에 위치한, 비슷한 규모의 회사로 성장했기 때문입니다.
타 사회적 기업과의 경쟁을 꺼리는 사회적 기업의 최고경영자는 이 딜레마를 직면했을 때, 성장하지 않는 ‘현상유지’ 전략을 택하거나, 현재의 사업과는 전혀 관계없는 신사업을 전개하는 ‘비관련 다각화’를 추진하는 경우로 나뉘고는 합니다.
우선 후자는 영리 기업, 사회적 기업을 떠나 매우 성공률이 낮습니다. 비관련 다각화는 말 그대로 회사의 핵심 경쟁력이 아닌 ‘미지의 영역’에 뛰어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통상 비관련 다각화의 성공 확률은 10% 미만으로 일컬어 집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현상 유지의 경우 전술한 바와 같은 수많은 부작용이 있는데, 특히 국내 사회적 기업에서는 동기 부여가 되지 않고 매너리즘에 빠지는 경우가 관찰됩니다. 일례로, 한 1세대 사회적 기업의 경우, 회사 규모가 몇 년째 정체되어 있어 구성원들이 수 년째 같은 직위에서 같은 업무만을 수행하고 있어, 개인 성장 또한 제한되고 동시에 근무 의욕이 감소하고 있는 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단기적인 해결책으로, 아직 자생력이 부족한 생태계를 위해 경쟁이 제한적인 시장 영역을 현재 보다 더 넓게 보장해주는 것을 들 수 있겠습니다만, 이는 미봉책일 수밖에 없습니다.
근본적인 해결 방안은 민간 시장에서 승부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는 것
문제 해결의 단초는 “민간 시장에 뛰어들기에는 제품의 경쟁력이 부족”하다는 부분에 있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사회적 기업은 영리 기업에 비해 제품과 서비스의 경쟁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공공부문의 사회적 기업 제한 입찰 등 작은 시장을 놓고 경쟁할 수밖에 없다는 편견이 사회적 기업의 가능성을 스스로 제약하고 있습니다.
방글라데시의 사회적 기업인 <그라민-다농>은 저소득계층의 어린이가 성장에 필요한 영양소를 균형있게 섭취할 수 있도록 요거트를 합리적인 가격에 생산, 판매하고 있는데, 이 요거트 제품은 사회적 기업에게 할당된 쿼터 속에서가 아니라 민간 시장에서 영리 기업의 제품과 경쟁하고 있습니다.
<KIVA>는 자금이 필요한 세계 각국의 개발도상국 시민들에게,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무담보로 자금을 대여해 줄 수 있도록 중개해주는 글로벌 소액 금융 사회적 기업입니다. KIVA의 사업 모델은 영리 기업의 기존 발상에 얽매이지 않고, 오히려 기존 사업 모델을 뛰어넘는 새로운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기업의 절대 숫자를 늘리자는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유사한 문제 의식과 사업 모델을 지닌 잠재 사회적 기업가들에게 무분별하게 사회적 기업 창업을 권장하는 현재의 정책이 옳은 방향인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회적 기업 숫자 늘리기 경향이 없다고 할 수 없는 현재의 정책은, 중장기적으로 유사 업종의 사회적 기업끼리 제한된 파이를 놓고 경쟁하는 결과로 이어질 위험이 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글 _ 희망제작소 사회적경제센터 김영철연구원 (brilliantkei@makehope.org)